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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함이 만들어내는 ‘설레임’과 ‘두려움’ 2021.08.01 | 좋은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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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좋은비전교회
댓글 0건 조회 207회 작성일 24-10-2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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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함이 만들어내는 ‘설레임’과 ‘두려움’



‘여행’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이전에 생각하지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유익이 있습니다. 두 주 전, 저희가족은 7박 8일 일정으로 3천 마일이 넘는 먼 길을 자동차로 여행하고 왔습니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도 경험했지만, ‘불확실함’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행의 목적지는 분명했지만,그 목적지에 이르는 동안 그렇게 많은 변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하늘과 눈부신 태양 아래를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차창이 부서질 듯 화살처럼 내리꽂는 소나기를 만나기도하고, 돌풍에 차가 휘청거려 차선을 이탈하는가 하면, 화씨120도까지 오르는 폭염 속에 차를 좀 쉬게 해야 했었고, 또갑자기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서 엉금엉금 기듯이 서행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여행에서 가장 어이없었던 때는 단 몇 초의 판단착오로, 왔던 길을 한 시간이나 되돌아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라면 아이다호(IDAHO) 주의 광활한들판을 지날 때였는데, 두 시간 정도 인터넷과 네비게이션, 그리고전화는 먹통이고, Gas station은 나타나지 않고, 지나가는차도 거의 없었습니다.

또다시 온몸으로 느낀 것이지만, 우리의 계획과 시간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경험이 저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영적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행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드는 것은 ‘확실함'이 아니라 ‘불확실함'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시냇물에서 조약돌을치우면, 그 시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맑고 시원한 시냇물 소리는 흐르는 냇물 속에 각기 다른 모양의 조약들이 있기에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만약 시냇물의흐름을 방해하는 돌들이 없으면 빨리 흘러가기는 하겠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맑고 시원한 시냇물 소리는들을 수 없습니다. 여행도,인생도 도처에 존재하는 ‘불확실함의 조약돌들’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그로인해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는 유익도 분명 있습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인생 길을 여행하는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불확실함이라는 이름의 서로 다른 두 음정이 만들어내는 뜻밖의 화음, 그것이 ‘인생’, 아닐까요? ‘설레임’은 우리의 도전과 시도를 최대로 끌어올리고, ‘두려움’은 실패와 낙심을 최소화하게 합니다.

교회 이전을 앞둔 우리에게도 ‘설레임과두려움’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불확실함의 조약돌들로인하여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니 우리에게 ‘불확실함도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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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9.26좋은비전교회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교회 이전을 위한 에스크로(Escrow)종료를 앞두고 …] 대만의 저명 학자인 난화이진(南懷瑾, 1918~2012) 선생의 책, [논어별재]에는 ‘주천난(做天難)’이라는 한시(漢詩)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의 하늘만 하랴.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오기를 바라며,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하늘을 바라네.   각자 자기 입장과 위치에 따라 바라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다 달라서 하늘이 도대체 누구의 편에서 하늘 노릇을 해야 할지 힘들다는 하늘의 고민(?)이 듬뿍 스며든 한시입니다. 인도에는 “세상에는 갠지스 강가의 모래알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각각의 사람들은 갠지스 강가의 모래알 만큼이나 많은 번뇌를 안고 살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의미로 ‘백인백색(百人百色)’이란 말을 쓰지 않습니까.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가진 백 명의 사람이 모이면, 백 가지 다른 의견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색(百色)의 생각들을 조율해서 하모니를 이룰 때, 우리가 속한 교회와 가정은 아름다움을 지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올슨(Olson)사와의 건물 매각과 라하브라(La Habra) 교회와의 건물 매입을 위한 에스크로가 마지막 한 주 남은 어느 아침,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한 참 동안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 드렸습니다. 각자 자기의 신념과 생각을 주장하며 자기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었겠지만, 당회와 건축위원회를 믿고 묵묵히 기도하며 오래 참고 함께 견디어 오신 우리 믿음의 식구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니 이모든 것이 은혜이고 주님의 섭리입니다. 이러한 섭리는 온 성도들이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참음과 서로 용납함으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때, 우리 교회 안에서 계속 경험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동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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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프고도 특별한 도시> 2021.09.12좋은비전교회
    <슬프고도 특별한 도시>​영화 <모가디슈>를 보고며칠 전, 둘째 딸 아이를 대학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 들렀습니다. 최근 무척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망설이다가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영화관으로 들어섰습니다. 영화 <모가디슈(Escape from Mogadishu)>는 1991년 1월, 아프리카의 동부에 위치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한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 생존자들의 생사를 건 탈출이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이유는 소말리아의 내전이 발발한 지 5년이 지난 1996년 1월에 제가 바로 그 <모가디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저는 단기 선교로 케냐와 소말리아에 갔다가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에 2주간 체류했었습니다. 모가디슈에서의 사역 마지막 날 노을지는 저녁, 저는 숙소의 옥상에서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유학이 아닌 신학대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그날 이후, 소말리아의 모가디슈는 제 마음에 언제나 소중한 장소로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내전으로 모가디슈 주재 북한 대사관이 반란군들의 무차별 공격을 당하여 부득불 한국 대사관저로 긴급히 피신을 가게 됩니다. 서먹서먹하고 서로를 경계하는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이 아무 말없이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근데 한국 대사의 부인이 깻잎 김치를 먹을 때, 북한 대사의 부인이 깻잎에 붙은 깻잎을 떼어주는 모습에서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그래, 우린 원래 한 민족이었는데…”어느 강의에서 들었던 문장입니다. “베어 버리려고 생각하면,이 세상에 잡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품으려고하면 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은 뽑아 버려야 할 잡초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고, 반대로 이 세상은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한 곳이기도 합니다. 생각과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스크 꼭 착용하시고, 생존이 실존인 영화 <모가디슈>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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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아는 나이 2021.08.29좋은비전교회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아는 나이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말하기를,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지학; 志學), 서른 살에 인생의 기초를 세웠으며(이립; 而立),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불혹; 不惑),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천명; 天命),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이순; 耳順),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다(종심; 從心).”드디어 50대(代)에 진입하던 날아침, 일기를 쓰다가 문득 떠오른 단어가 “지천명(지천명)”이었습니다. 공자는자신의 나이 50세에 천명(天命)을 알았다(知)고했습니다. 50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 온종일 나의 머릿속을떠나지 않았던 단어가 바로 천명(天命)이었습니다. 나의 천명(天命)은 무엇인가?나는 천명(天命)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나는 왜 죽지 않고 살아있는가?나는 왜 없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가?……생일날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들… 내가생각해도 나는 스스로를 참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흔들림이 유난히도 많았던 40대는 이제 추억의책장 속에 남기고, 새롭게 시작하는 50대의 삶은 다시금천명(天命)을 확인하고 소명(召命)을 따라 사명(使命)에 집중하며 살아가기를 50대의 첫 날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찬송가 30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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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2021.08.08좋은비전교회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지금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2020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열일곱살 천재 궁수, 김제덕 선수는 혼성 단체전과 남자 단체전에서 금빛 메달 두 개를 거머쥐면서 대한민국에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양궁의시작과 끝은 바람이다”라는 말처럼, 양궁은 바람의 방향과바람의 속도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의외의 변수가 항상 존재하는 실외 스포츠입니다. 따라서궁수가 과녁의 정중앙을 조준해서 활을 쏜다고 해서 언제나 10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풍향과 풍속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2011년도에 개봉된 영화 [최종병기, 활]은,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신궁(神弓)으로 불리는 주인공 ‘남이’가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고, 하나뿐인 누이 동생을 구출한다는내용입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런 명대사가 나옵니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궁수에게 있어서 바람은 두려운 존재일수밖에 없기에 바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제 열일곱 살인 김제덕 선수는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하루에 1,000발의 화살을 쏘는 연습을 11시간씩하면서 바람을 극복하는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바람을 계산하는 법도 배우겠지만, 궁극적으로 궁수는 바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법을 훈련하고 터득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도 매일같이 풍향이다르고 풍속이 다른 여러가지 종류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때마다 그 바람을 머리로 계산하고, 따지고, 분석하기 보다, 바람을주관하시는 분 앞으로 나아가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법을 매일 훈련한다면, 우리는 시시때때로 몰아치는 광풍에도 맞서 뚫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바람이 아니라 바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의 삶 살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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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확실함이 만들어내는 ‘설레임’과 ‘두려움’ 2021.08.01좋은비전교회
    불확실함이 만들어내는 ‘설레임’과 ‘두려움’‘여행’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이전에 생각하지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유익이 있습니다. 두 주 전, 저희가족은 7박 8일 일정으로 3천 마일이 넘는 먼 길을 자동차로 여행하고 왔습니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도 경험했지만, ‘불확실함’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행의 목적지는 분명했지만,그 목적지에 이르는 동안 그렇게 많은 변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하늘과 눈부신 태양 아래를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차창이 부서질 듯 화살처럼 내리꽂는 소나기를 만나기도하고, 돌풍에 차가 휘청거려 차선을 이탈하는가 하면, 화씨120도까지 오르는 폭염 속에 차를 좀 쉬게 해야 했었고, 또갑자기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서 엉금엉금 기듯이 서행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여행에서 가장 어이없었던 때는 단 몇 초의 판단착오로, 왔던 길을 한 시간이나 되돌아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라면 아이다호(IDAHO) 주의 광활한들판을 지날 때였는데, 두 시간 정도 인터넷과 네비게이션, 그리고전화는 먹통이고, Gas station은 나타나지 않고, 지나가는차도 거의 없었습니다. 또다시 온몸으로 느낀 것이지만, 우리의 계획과 시간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경험이 저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영적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행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드는 것은 ‘확실함'이 아니라 ‘불확실함'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흐르는 시냇물에서 조약돌을치우면, 그 시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맑고 시원한 시냇물 소리는 흐르는 냇물 속에 각기 다른 모양의 조약들이 있기에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만약 시냇물의흐름을 방해하는 돌들이 없으면 빨리 흘러가기는 하겠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맑고 시원한 시냇물 소리는들을 수 없습니다. 여행도,인생도 도처에 존재하는 ‘불확실함의 조약돌들’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그로인해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는 유익도 분명 있습니다.아직 가보지 않은 인생 길을 여행하는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불확실함이라는 이름의 서로 다른 두 음정이 만들어내는 뜻밖의 화음, 그것이 ‘인생’, 아닐까요? ‘설레임’은 우리의 도전과 시도를 최대로 끌어올리고, ‘두려움’은 실패와 낙심을 최소화하게 합니다. 교회 이전을 앞둔 우리에게도 ‘설레임과두려움’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불확실함의 조약돌들로인하여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니 우리에게 ‘불확실함도 은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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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푸엔테(La Puente)를 지나 라 하브라(La Habra)로 2021.07.04좋은비전교회
    라 푸엔테(La Puente)를 지나 라 하브라(La Habra)로 지난 주일, 건축위원회 모임을 가진 후 함께 기도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건축위원 가운데 한 분이 스페인어(Spanish)로 “라 푸엔테(La Puente)”는 [다리, the Bridge], 또 “라 하브라(La Habra)”는 [언덕을 통과하다, pass throughthe hills]라는 의미라고 각 단어를 풀이해 주셨습니다. 요즘 저 역시 두 단어의 뜻에 주목하고 있던 차라 그 분이 언급하신 후로 더욱 두 단어를 되새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라 푸엔테(La Puente)” [다리,the Bridge]를 곰곰이 생각하다 우리 교회의 통합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하나로커뮤니티교회 한어권과 엠마오장로교회 한어권이 통합하여 좋은비전교회(Good Vision Church)가 탄생되었고, 하나로커뮤니티교회 영어권과 엠마오장로교회 영어권, 그리고 하일랜드코너스톤교회 영어권이 통합하여 크로스브릿지휄로십(CrossbridgeFellowship)이 탄생되었는데, ‘이 일들이 라 푸엔테(La Puente)에서 이루어졌으니 이 곳이 이름그대로 다리(the Bridge)역할을 해 주었구나…’라는 생각에 이르자, 라 푸엔테(La Puente)가 얼마나 의미있게 다가왔는지모릅니다. 그리고 “라 하브라(La Habra)” [언덕을 통과하다, pass throughthe hills] 단어에 감춰져 있을 의미를 다시 생각하여보는데 자꾸 “the hills”(언덕들)에 제 마음이 향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통과하게 될 “그 언덕들”은 과연 어떤 종류일까? 천연색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 푸른 초원의 언덕일까? 아니면 고난과 시련이 기다리는 골고다 십자가의 언덕일까?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떤 종류의 언덕들을 지나게 될까?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기도의 무릎을 꿇었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섬광처럼 깨닫게 하셨습니다. ‘어떤 종류의 언덕들을 통과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그 언덕들을 지나갈 것인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혼자 걷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덕을 통과하다(pass through thehills)” 끝자락에 살포시 “예수님과 함께(with Jesus)”를 덧붙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언덕들을 통과하라(Pass through the hills withJesus )”제 임의로 붙이긴 했지만 정말 놀랍게도 두려움이 사라지고 설렘과 기대감이 밀물처럼 제 가슴에 차올랐습니다. 저는 좋은비전교회와 크로스브릿지휄로십이 라 하브라(La Habra)에서 통과하게 될 “언덕들(the hills)”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것은 알고 있습니다. “언덕들(thehills)”의 종류가 어떠하든지 “예수님과 함께(withJesus)” 걸어간다면,너끈히 올라가고 통과한다는 사실입니다.반드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하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함께 기도로 그 날을 준비하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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