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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과 두 줄 사이에서” 2024.08.04 | 좋은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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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좋은비전교회
댓글 0건 조회 267회 작성일 24-10-2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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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혹시나하는 마음에 시도했던 첫 코비드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후, 자가 격리를 하는 10일 내내 온통 나의 신경은 코비드 테스트 결과에쏠려 있었습니다.

‘한 줄이냐, 두줄이냐.’

 

2-3일 지나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고 당연히 교회에 나가리라는확신에 찬 생각과 달리 테스트를 할 때마다 선명하게 나타나는 ‘두 줄’, 양성 반응에 저의 가슴은 점점 타들어갔습니다.

코비드 테스트를 하는 모든 과정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례하듯 매우 진지했습니다. 두 손을 깨끗이 씻고 간절함으로 기도한 후, 코 안으로 깊숙이 넣어서점액을 채취한 솜방망이(swab)를 특별한 액체가 담긴 튜브에 넣어 잘 섞고, 검사기(test cassette)에 세 방울을 떨어뜨리고는 잠잠히기다립니다. 설명서에는 15분을 기다리라고 적혀 있는데, 그 옛날 대입학력고사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듯 초조한 심정으로 검사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나의 눈 앞에 두줄이 선명히 드러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0초...

핫핑크색의 ‘두 줄’을볼 때마다 몸에서 힘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고 절로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해발 3,660미터의 록키 산을 보무당당하게 하이킹했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평정심과 일상을 잃어버린 제 자신이 한없이 나약하게 여겨졌습니다.

 

인류의 첫 인간인 아담은 히브리어 ‘흙’을 뜻하는 ‘아다마’에서유래한 이름입니다.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흙에 불안을더하면 인간이 되고, 인간에서 불안을 빼면 흙이 된다고 했는데, 늘불안을 느끼고 방황하는 것은 흙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의 운명이자 본질입니다. 육신의 한계와 연약함, 불안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절실히깨닫게 됩니다.

 

자가격리 10일째 되는 수요일 아침,거짓말처럼 나의 시야에 들어온 선명한 ‘한 줄!’, 마침내음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쳐들었고, 입에선“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외침이, 가슴은 울컥했습니다.‘한 줄’을 보는 순간, 몸의 세포들이 되살아나춤을 추는 것만 같았습니다.

 

지난 열흘 간의 자가격리 경험을 통해 우리 인생도 ‘한 줄과 두 줄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옛날 솔로몬은“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전7:14, 개역한글)라고 했는데, 한줄(“형통한 날”)을 만나든지 두 줄(“곤고한 날”)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 꼭 필요하기에허락하신 일임을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주님의 시간에 성도님들을 다시 보게 되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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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 잘 다녀왔습니다!”September 15, 2024( 부제 : ‘길을만드는 사람들’ ) 사랑하는 우리 좋은비전 성도님, 그 동안 주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저와 홍용화 장로님(선교사역원장)은지난 9월 2일(월)에 미국을 떠나 13일(금)까지 태국 치앙마이(전은주 선교사)와캄보디아 프놈펜(김석훈 선교사) 선교지를 방문하고, 저는 고향인 대구에 이틀을 머물다 금요일에 귀국하였습니다.9월 3일 화요일밤 자정에 태국 치앙마이에 도착한 저희는 [엘리샤 기숙사]를 베이스 캠프로 정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현지 교회를 방문하는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므앙끗교회, 세리팝교회, 후아이므앙교회, 메뎃노이교회, 빠뚤루아이교회, 쨈노이 초등학교,하나 유치원’을 차례로 방문하고, 9월8일 주일 태국에서의 마지막 방문지인 ‘지저스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매일 하나님의 열심과 전은주 선교사님의열정으로 맺어진 선교의 열매들을 보는 감동이 있었습니다.9월 8일 주일 밤 8시, 캄보디아프놈펜에 도착한 저희는 [커버넌트 미션 신학교]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다음날 아침 ‘어메이징 그레이스 초등학교’와 2주 전에 현지인이 개척한 ‘개혁장로교회’를 방문하여 목사님과 사모님을 격려하고, 가슴 아픈 역사를고스란히 담고 있는 ‘킬링 필드(Killing Field)기념관’과 동남아시아의 젖줄인 ‘메콩강’을다녀왔습니다. 커버넌트 미션 신학교에서는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과 채플 인도를 하면서, 캄보디아에도 푸르고 푸른 복음의 계절이 오기를 기도하였습니다.전은주 선교사님과김석훈 선교사님, 두 분과 8일간 동행하면서 그들은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라 여겨졌습니다. 길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고, 길은 만드는 것입니다. 등산로가 처음부터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길을 만드는 것이 처음은 무척 어렵지만, 누군가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계속 닿고 이어지면 그 길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대신, 길은 안 가면 없어집니다. 잘 닦여진등산로도 사람들이 다니지 않으면 그 길은 사라지고 마는데, 그것이 길의 특징입니다.청년 시절, 가슴을 뜨겁게 했던 “우리 오늘 눈물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그리스도의 푸르고 푸른 꿈이 다시 돋아나도록 땀흘려 길을 만들고 계신 선교사님들과 동행했던 2024년의 9월은 저의 목회 여정에서 잊지 못할 것입니다.또한 꿈꾸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좋은비전교회도 주님 다시 오시는그 날까지 “내일로 가는 소망의 길”, “예수님께로 가는생명의 길”을 만드는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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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에서 만난 시 2024.08.25최준우 목사
    "장례식장에서 만난 시"August 25, 2024김환주 권사님의 모친이신 고 박정자 권사님의 천국환송예배에 참석했다가예배 순서지 안에서 발견한 한 편의 시,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나태주시인)라는 시가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나 태 주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사랑한다는 말,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사랑한다는 그 말 끝까지감당할 수 없기 때문.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모진 말,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외롭고 슬프다는 말,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86년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마치신 어머니를 이제 천국으로 떠나 보내는날, 장녀로 오랜 세월 어머니를 가까이서 극진히 모신 김환주 권사님이 눈물을삼키시며 낭송한 이 시가 지금까지도 제 마음 속에 울리고 있습니다.인생을 살다 보니 해 주고 싶은 말, 옳고 그름을 가리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의속마음을 꺼내놓지 못하고,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고도 모르는척해야만 순간들이 참 많습니다.그러나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기에 오늘도 그 마음을 달래며,숨기며, 말을 아끼며 살아갑니다. 주님은 아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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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한 신뢰, 맡김 2024.08.11최준우 목사
    온전한 신뢰, 맡김August 11, 2024록키 마운틴 로드 트립(Road trip)을 하면서 온몸으로 습득한 단어는 ‘맡김’입니다.여행 출발 전에 밴(Van)을 렌트할 때, 아들(24살)과 딸(21살)도 운전할수 있는 옵션을 선택했습니다. 집에서 콜로라도 주까지 최소 16시간을운전해야 하는데, 나 혼자만 하기에 무리라는 판단을 했고, 또아이들이 자기들도 운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기 때문입니다.과연 내가 자동차 운전대를아들과 딸에 맡길 수 있을까?  집을 출발하여 콜로라도 주까지달리는 16시간 동안, 운전대를 맡길까? 말까? 사이에서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질주하는 대형 트레일러, 곡예하듯 수시로 차선변경하는 차들, 졸음 운전, 급경사 등등… 아빠의 관점에서 도저히 운전대를 맡길 수 없는 이유들을대면서 ‘그래,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때 맡기자!’고 결심합니다.그러나, 막상 목적지인 록키 마운틴에서의 운전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정상까지올라가는 길은 낭떠러지 옆으로 굽이굽이 도는 일차선이었고, 짙은 운무와 산안개로 시야는 급격히 좁아졌으며, 또 달리는 차 앞에 갑자기 떨어지는 번개와 천둥 소리, 우박 등정신을 차릴 수 없는 악천후는 때때로 운전 경력 34년에 미대륙 횡단의 경험이 있는 저의 간담도 서늘하게만들었습니다.‘안 돼! 절대 안 돼! 맡길 수 없어!’ 혼자 생각에 고개를흔들었습니다. 여행 나흘째 되던 날, 나름 위대한(?) 결단을 하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맡겨 보자!’라며 아들에게 자동차 키를 넘기고 옆자리에 앉았는데, 차가출발하자마자 자동반사적으로 잔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속도 줄여라, 안쪽 차선으로 붙어라, 바깥 차선으로 달려라, 앞차와의 거리 유지해라, 브레이크 자주 밟지 마라, 한 눈 팔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아빠의 잔소리를 묵묵히 듣던아들의 입에서 탄식처럼 나온 말…“아빠, 제발… 제게 좀 맡기세요!”가족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더이상 잔소리를 하지 말자!’ 다짐하고는 아예 운전석 뒷자리에가서 앉았지만, 잔소리는 불쑥불쑥 여전히 튀어나왔습니다. 그러다스르르 잠이 들었고, 얼마가 지났을까 화들짝 놀라 눈을 떴는데, 내가잠을 잔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들은 운전을 잘 하고 있었습니다.내가 운전대를 잡아야만 차가안전할 줄 알았는데, 내가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자못 놀랐습니다.그 이후로 코로나로 인한 심한 근육통 때문에 운전을 오래 할 수 없어 자연스레아들과 딸에게 운전대를 맡겨야만 했습니다. 아빠의 마음에서 불안과 염려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예정된 여행 일정을 다 마치고 우리 가족은 안전히 귀가했습니다.‘맡긴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는 사실을 새롭게 다시 체험했습니다. ‘맡김’이 힘든 이유는 ‘온전한신뢰’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뢰하는 만큼 맡김의종류와 분량도 달라질 것입니다. 맡기면 평안하지만 맡기지 못하면 항상 불안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만큼 평강을 누릴 수 있지만, 내가 붙들고 있는한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합니다.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루하루최선을 다하되,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주를향한 온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맡김의 영성을 체득하기를 소원합니다.“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너를 붙드시고,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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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과 두 줄 사이에서” 2024.08.04좋은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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