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중환자실, 30분' 2023.03.26 | 좋은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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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30분
아버지가 위중하시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긴급히 한국에 온 지, 어느 덧 5일째(3월 25일, 토요일)를 맞이합니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중환자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 단 30분.
바로 그 30분 동안의 만남을 위해 저는 존재하고, 매일 23시간 30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30분은 3분보다 더 빨리 지나가는 듯합니다. 누군가에겐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눈물겹도록 절실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새삼 놀랄 일 아니지만, 지금 저에게 주어진 이 “하루 중 30분”은 아버지와 저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로 그 “절실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간밤에 잠을 못주무셨는지 면회시간 30분 내내 깊은 잠에 빠져 계셨습니다. 아… 1분 1초가 소중한데… 아버지를 깨울까? 말까? 동생과 망설이다가 결국 주무시게 한 채, 조용히 기도를 하고 병상을 떠나려는 순간, 아버지가 깨어 나셨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들, 며느리, 고맙다.”
아버지와 우리의 대화 내용은 실로 간단하지만, 이 짧은 대화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홀로 긴 밤을 뜬 눈으로 보내실 아버지를 뒤로 하고 중환자실을 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천금보다 무거웠고 입에서는 병원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흐트려 놓았던 삶을 차곡차곡 정돈하고, 아름답게 이 세상을 마무리 지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말기 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등등의 생각들이 더욱 저를 진중하게 만듭니다.
매일 중환자실을 드나들며,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했던 톨스토이의 말도 떠오르고, 웰빙(Well Being) 못지않게 웰다잉(Well Dying)이 너무 중요함도 깨닫습니다.
중환자실에서의 30분은 인생 수업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