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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214일’의 무게 2022.09.18 | 좋은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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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좋은비전교회
댓글 0건 조회 220회 작성일 24-10-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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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214일’의 무게



지난 9월 8일, 향년 96세로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1952년, 25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이듬해인 1953년에 대관식을 거행한 이후, ‘70년 214일’ 이라는 영국 역사상 최장수 여왕의 자리를 지키며, 백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감당했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상징이었던 여왕은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앞세우는 겸손의 리더십으로, 영국인들 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과거 영국의 잔학성에 대한 비판의 쓴소리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서, 세상을 떠난 한 군주의 일생을 두고 세간의 평가가 자못 엇갈리는 것도 느낍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차치하고, 저는 미디어를 통해 영국 여왕의 장례식 뉴스를 보다가 ‘한 장면’에 저의 시선이 꽂혔습니다. 그 장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할 때였는데, 그 관 위에 여왕이 평생 감당해 온 왕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화면 속 왕관을 보는 순간,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남겼던 작품에서의 문장 하나가 생각났는데, 15세기경 끝없이 권력에 집착했던 ‘헨리 4세’를 꼬집기 위해 그의 희곡에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셰익스피어가 말한 [왕관의 무게]란,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왕관이라는 물건의 무게가 아니라, 왕관을 쓰는 자에게 주어진 책임감의 무게, 그 자리와 위치에서 나오는 사명감의 무게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두 눈이 화면 속 자줏빛 왕관을 쫓아가다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무려 70년 214일 동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 왕관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왕관을 벗어 버리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을까?’ ‘왕관을 벗어버리고 싶었다면 언제 그랬을까?’,  ‘여왕은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나의 얕은 머리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70년 214일의 세월을 견딘 왕관의 무게…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부여된 책임감과 사명감의 관점에서 어느 누구나 각자 견뎌야 할 무게가 있고, 그 무게는 어느 누구의 것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

한 역사적인 인물이 무거운 왕관을 남기고 떠난 자리에서, 저는 다시금 Sense of Calling,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의식을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아 지금 여기에 제가 있음을 믿고, 그가 맡기신 사명의 무게도 끝까지 견디어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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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마지막 주일에 맞이하는 성탄절' 2022.12.25좋은비전교회
    2022년 마지막주일에 맞이하는 성탄절메리 크리스마스!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평강이 좋은비전 성도님들의 가정과마음에 풍성하게 임하시길 축원합니다.[본 회퍼와 함께 기다리는 성탄]이라는 묵상집에, “말구유와 십자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두 장소를 지목합니다. 한 곳은 말구유입니다. 말구유는 어떤 곳입니까? 낮은 곳입니다. 춥고 냄새나는 곳이지요. 아무리 가난한사람이라도 따뜻한 방에서 태어납니다. 말구유는 버림받은 장소입니다. 사람의 장소가 못됩니다. 또 한 곳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죽임당하는 장소입니다. 가장 흉악한 죄수를 가장 참혹하게 죽이는 형틀입니다. 도저히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입니다. 그 곳은 하나님의 장소가 아닙니다.하나님이 없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들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리스도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십자가에서죽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의 시작은 말구유 안에서였고,마지막은 십자가 위에서였습니다. 말구유와 십자가는 [자기 부인], [자기 비움], [자기 낮춤]의 자리입니다. 2022년의 성탄주일을 맞이하는 우리 성도들이 품어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바로 [자기부인], [자기 비움], [자기 낮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과 사건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아픔은 자기 부인이 아닌 자기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고, 자기 비움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채우려 하기 때문이며,자기 낮춤이 아닌 자기를 더 높이고 더 과장하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것입니다. 오늘은 성탄주일이자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돌아보면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항할 때보다 맞바람이나 예측불허의 풍랑을 맞아 요동치는 순간이 더 많았던 2022년이지만, 그래도 항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해하여 마침내 여기까지 오신 성도님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위로하며 축복합니다.    여기까지 잘 오셨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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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라 그리고 잡으라' 2022.12.04좋은비전교회
    기억하라 그리고 잡으라(Remember and Seize)마지막 잎새처럼 어느 덧 올해도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한 달을 보내면서,요즘 새벽마다 전도서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저에게 영적으로 큰 유익을 주고 있습니다. 어렸던10대와 20대에도 전도서의 말씀을 보았고, 청장년의30대와 40대에도전도서의 말씀을 묵상했지만, 이제50대가 되어서 대하는 전도서의말씀은 똑같은 본문이어도 깨달음이 예전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아니 다를 수 밖에 없고, 달라야만 하지요.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해보고,다 가져보고, 다 누려본 솔로몬이 전도서에 남긴 그의 첫 진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이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이 고백을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솔로몬은전도서를 통해 헛되고 찰나적인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보람되고 의미있는지를 진지하게 고찰하였고,그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Mori)는“죽음을 기억하라(Remember to die)”는뜻입니다. 모든 인간의 가장 확실한 미래는 죽음입니다.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이 있으며,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살았던 삶의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있음을 기억하며 살라는 것입니다.다른 한 가지는 카르페디엠(Carpe Diem)으로, 문자적인뜻은 “현재를 잡으라(Seize the day)”이고, 의역하면 “선물로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작하는 날과 마지막 날에는큰 의미를 두지만, 시작과 마지막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늘, today]의 소중함은 곧잘 놓치고 살아갑니다. 시작과 마지막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늘이 모여 우리의 인생은 수놓아져 가는 것이고,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하나님이주신 선물로 여기며 평범한 오늘을 의미있는 오늘로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일텐데 말입니다.모든 인간은 날마다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도적같이 임할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당황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가 살아내야할 삶의 내용은 너무나 중요하고, 결코 허송세월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감사하며 더욱 진정성있게 살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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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말씀 콘서트와 추수감사주일' 2022.11.20좋은비전교회
    가을 말씀 콘서트와 추수감사주일(2022년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추수감사주일을앞둔 지난 나흘간, 우리 교회에 [가을 말씀 콘서트]가 있었습니다.늘 말씀을 준비하여 긴장된 마음으로 강단에 올라 말씀을 전하던 제가 이번에는 강단아래에서 교우들과 함께 강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아~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했던지요... 오랜만에 ‘친정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새댁’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도 말씀콘서트에서의 감동이 가시지 않고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첫째날 집회를 통해서, 야곱이 [험악한 나그네의 세월, 147년을 살아낼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에게주신 약속의 말씀 덕분이었음을 기억합니다. “내가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28:15)     둘째날 집회를 통해서, 다윗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옳으심을 인정하고 굳게 붙들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이해가 안되지만, 그래, 그분의 뜻이 있으시겠지!”“내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결국 선을이루실 것은 알아!”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만이 앞으로 우리가살아가고 걸어갈 원동력임을 배웠습니다.        셋째날 집회를 통해서, 아삽은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넘어질 뻔했고 미끄러질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성소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순간, 하나님의 큰 그림, 전체를 볼 수 있는 영적 안목도 가지게 되었습니다.“성소란, 깨달음이 있는 곳,깨달음을 발견하는 곳”이라는 목사님의 정의가 특별히마음에 새겨졌습니다.      넷째날 집회를 통해서,[우리 교회와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바람과 기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하셨습니다. 교회를 이루는 모든 지체들이 서로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함께 담당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줌으로 항상 예수님의 온기를 유지하는 따뜻한 교회가 되기를…… 우리좋은비전교회의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진행된 [가을 말씀 콘서트]는 수확의 계절에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쥐어 주신 탐스런 열매와도 같은 선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이 고백으로 남은 한 해 유종의 미를 거두고, 한 달여 후에 맞이할새해 역시 하나님 앞에서 엎드림으로 한량없는 은혜를 구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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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2022.10.30좋은비전교회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라하브라 이전 1주년을 맞이하며…) 오늘은우리 교회가 라하브라(La Habra) 언덕으로 이전하여 첫 감사예배를 드린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1년 전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라하브라에서의역사적인 첫 주일을 앞두고, 늦은 밤 혼자 새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때의흐릿한 기억을 되살려 보면, 본당 앞자리에 기도의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물고서는 머릿속에 퍼져갔습니다. “여긴 어디? 나는누구?”로부터 시작해서 “아… 어떡하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당시 저의 심정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설렘과 기대감보다 솔직히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이 더 크고 무거웠었습니다. 그 후로, 만 1년의 시간을 거의 채워가던 지난 주간, 다시 본당 앞자리에 무릎을 꿇었을 때, 라푸엔테와 라하브라 사이의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두 교회의통합, 올슨사와의 건물 매각, 루터란교회 건물 매입, 그리고나서 눈썹이 휘날리도록 진행된 교회 리모델링 공사와 대대적인 이사, 첫주일 감사예배와 헌당 예배, 100여 명의 방문자와 50여명의새가족 등록, 그리고 4번에 걸친 새가족 클래스 수료식과수 년 만에 열린 새가족 환영회…… 저 뿐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입에서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과 찬송이 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누군가말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우리가 살지 않은 날들” 이라고.매일 걸어가는인생의 길 위에서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또 어떤 일도 내 임의로 주관할 수 없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의 앞날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순간에 이미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과 받은 복을 헤아리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 가운데그분이 행하실 놀랍고도 아름다운 일들을 생각하니 또다시 설레이고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사랑하는교우 여러분, 알 수 없는 미래와 앞날은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리고, 범사에그분의 으심을 인정하며, 한걸음 한걸음 우리 주님과 날마다 기쁘게 동행하는 우리 좋은비전교회 모든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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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7
    “인생은 피아노와 같습니다.” 2022.10.23좋은비전교회
    “인생은 피아노와 같습니다.” Life is like a piano.The white keys are happy days, and the black keys are sadones.Remember that you need both to make music.  - Unknown -인생은 피아노와 같습니다.흰색 건반들은 행복한 날들이고, 검은색 건반들은 슬픈 날들입니다.기억하세요, 음악을 만들려면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 작자 미상 -간결하지만, 지나온 삶의 자취를 돌아보고,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도록 긴 여운을 남긴 글이었습니다. 새벽예배를마치고, 성도님들이 모두 돌아간 텅 빈 본당 앞쪽에 덩그러니 서 있는 그랜드 피아노에 다가갔습니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피아노에는 몇 개의 흰색 건반과 검은색 건반이 있을까?’그래서 직접 세어 보았습니다. 피아노에는 흰색 52개, 검은색 36개, 총 88개의 건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이 88개의 건반으로 이 세상에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고, 또 새롭게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신기했습니다. 일찍이솔로몬은 전도서 7장 13-14절에서 힘주어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이 구절을[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 일을 알지 못한다.” 새로운음악을 만들거나 음악을 연주하려면 흰색 건반과 검은색 건반 모두가 필요하듯이 우리 인생이 완성되기 위해서도 형통한 날 뿐 아니라 곤고한 날이 필요하고, 좋은 때 뿐 아니라 어려운 때가 있어야 합니다.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형통한 날과 좋은 때 뿐만 아니라, 곤고한 날과 어려운 때에도 우리 주님은 한결같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우리 삶은 어느 조각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19세기 말, 영국의 뛰어난 화가이자 작가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1819-1900)은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것이 아니라 채워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덧 2022년의 시월이 저물고 있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남은 2개월여기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추억들’로 차곡차곡 채워가기를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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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214일’의 무게 2022.09.18좋은비전교회
    ‘70년 214일’의 무게지난 9월 8일, 향년 96세로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1952년, 25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이듬해인 1953년에 대관식을 거행한 이후, ‘70년 214일’ 이라는 영국 역사상 최장수 여왕의 자리를 지키며, 백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감당했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상징이었던 여왕은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앞세우는 겸손의 리더십으로, 영국인들 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과거 영국의 잔학성에 대한 비판의 쓴소리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서, 세상을 떠난 한 군주의 일생을 두고 세간의 평가가 자못 엇갈리는 것도 느낍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차치하고, 저는 미디어를 통해 영국 여왕의 장례식 뉴스를 보다가 ‘한 장면’에 저의 시선이 꽂혔습니다. 그 장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할 때였는데, 그 관 위에 여왕이 평생 감당해 온 왕관이 놓여 있었습니다.‍‍화면 속 왕관을 보는 순간,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남겼던 작품에서의 문장 하나가 생각났는데, 15세기경 끝없이 권력에 집착했던 ‘헨리 4세’를 꼬집기 위해 그의 희곡에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셰익스피어가 말한 [왕관의 무게]란,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왕관이라는 물건의 무게가 아니라, 왕관을 쓰는 자에게 주어진 책임감의 무게, 그 자리와 위치에서 나오는 사명감의 무게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두 눈이 화면 속 자줏빛 왕관을 쫓아가다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무려 70년 214일 동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 왕관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왕관을 벗어 버리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을까?’ ‘왕관을 벗어버리고 싶었다면 언제 그랬을까?’,  ‘여왕은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나의 얕은 머리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70년 214일의 세월을 견딘 왕관의 무게…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부여된 책임감과 사명감의 관점에서 어느 누구나 각자 견뎌야 할 무게가 있고, 그 무게는 어느 누구의 것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 한 역사적인 인물이 무거운 왕관을 남기고 떠난 자리에서, 저는 다시금 Sense of Calling,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의식을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아 지금 여기에 제가 있음을 믿고, 그가 맡기신 사명의 무게도 끝까지 견디어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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